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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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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부와 성자는 일체이시며두위 사이를 완전히 절연 시킬 수는 없다그러므로예수 그리스도를 도외시한 예배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우리는 성부에 나가듯이 성자께도 나가서 기도와 찬양을 드릴 모든 권리가 있다우리는 성자께도 예배를 드리도록 요구를 받고 있는 것이다

 

-초대교회에서 입증됨

교회가 생긴 바로 그때부터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주님(Lord)으로 알고 있었다성도들은 세례(침례) 받을 때도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였으며(6:3-4/3:26-27), 그리스도인들은 집회시에도 주님으로서의 그리스도께 기도를 드렸고(3;10-12/ 딤후1:2) 모든 무릎이   앞에 꿇게  소망의 그날에는 예수께서주님으로 경배를 받으실 것이며(14:8-12 / 2:9-11) 도움이 필요할 때도 주님으로서의 그리스도께 기도가 드려졌다(4:14-16 / 요일 5:4-15). 모든 예배에 있어서의 기본적인 기준선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라면 사실이다

 

-사도 도마의 고백

예수께서 부활하신후 도마는 그분을 뵈온 후에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다도마는 예배에 대해 바른 관점을 가졌다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하지만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성자) 하나이시며 같은 분이심을 알고예배를 드려야 한다성부와 성자는 다같이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이와같이 우리는 모일때 성부와 성자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그러면 성령께는 어떠한가?

 

성령에 대한 예배

성경에서 직접적으로 성령께 예배를 드리라고 지적하는 것은 없다그러나 모든 예배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 드려지게 된다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가"아바 아버지"라고 부를수 있게 하는 분은 바로 성령이시다(8:15/4:6). 우리는 성령의 능력과 임재하심 가운데서 예배드리러 하나님께 나아가게 된다성령께서 예배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계시는데우리는  사실을 결코 부인해서는  된다. 

 

나는 또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와 동등하시므로 그 분(성령)도 또한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덧붙이고 싶다. 성경은 성령께 예배하라고 명시적으로는 말하지 않지만, 그분께도 예배가 드려져야 한다. 많은 성경 구절들에서 성령께서 "하나님의 영(성령)이라고 불리우고 있으며(마3:16) / 12:28 / 롬8:9, 14/ 15:19 / 고전2:11, 14 / 3:16 / 6:11 / 7:40 / 12:3 / 고후3:3 / 엡4:30 / 요일 4:2), 또한 "그리스도의 영"으로도 불리우고 있다(롬8:9 / 벧전1:11). 성령께서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에게서 발출하시므로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따라서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성령께 예배드리기를 주저하지 말자. 

 

그러나, 성삼위가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지만, 교회시대는 성령의 독특한 사역기라는 면에서는 성령은 우리를 부르셔서 성자께 예배케하고, 성자는 우리를 부르셔서 성부에 예배드리게 하신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다면 요한복음 4장 20-24절에서는 누가 예배의 대상인가? 예배의 대상은 영이신 하나님이신데, 떠돌아 다니는 불확실한 영이 아니라, 아버지이신 하나님이시다. 누구의 아버지이신가? 온 인류의 아버지이신가? 아니다. 그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과 동일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다. 우리가 성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우리의 마음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 예배하는데로 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예배에 대한 예언적 묘사

 

성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묘사하는 놀라운 장면이 요한 계시록 14장 1-3절에서 펼쳐지고 있다. 사도 요한은 장래 일에 대한 환상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계13:8 / 요1:29 참조)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당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이것이 바로 예배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인가? 대환란의 기간 동안에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쓰시던, 이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특사들이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넘치는 찬양을 드리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경우에 합당하고, 당연한 일이다. 


YAERIM PRESBYTERIAN CHURCH 3625 Chapel Road, Newtown Sq., PA 19073. 610- 931-4380

sketchbook5, 스케치북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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