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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장로교회

2016.06.12 20:00

열한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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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신학자들은 구속사라는 표현에 대해 비동정적이다. Heilsgeschichie란 말을 다른 말로 번역할 수 없고 그리 좋은 표현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신약 어디서도 "구속사"라는 표현은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신약에 나오는 희랍어 oikovouia는 세속적인 용법에서 계획, 관리, 가사라는 사상을 포함하고 있다. 능동적인 뜻으로 "집안 일을 돌봄"이란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 말은 더 좋은 표현이 없어서 "구속사"라고 부르는 것에 가깝다. 그리고 영어로 번역 하면 management of a household; task, work, responsibility; (divine) plan의 의미이다. 그리고 이 말은 바울이 로마서와 고린도서에서 구원의 신적인 계획에 대하여 그가 받은 초자연적 계시에 대해서 말할 때 사용한 신적인 신비의 개념과 관련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바울 사도 자신과 그의 직분이 이 oikovouia에 속한다는 것은 고린도전서 9장 17절에 "나는 oikovouia를 위임받았다"는 구절 및 골1:25절과 엡3:2절 등에 지적되어 있다. 사도에게 나타난 신적 계획의 계시 및 그에게 맡겨진 위임은 그 계획에 속하고 따라서 구속사 자체 안에 속한다. 사도는 하나님의 신비의 청지기이다(고전4:1)

 

구속사란 그리스도의 죽음과 구원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말한다. 성경은 단순한 말씀이나 진리를 담은 것이 아니라 창조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근원으로 하여 재창조의 완성에 도달하기까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기록한 것으로 보는 구원사 신학이라 할 것이다. 

 

구원사 신학이라는 말은 교회사적으로 Ireneaus가 최초로 주장했다. 그는 주로 노스틱 이단을 반박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세계 창조, 그리스도의 성육신, 천국 재림을 주장했다. 그리고 17세기에 와서는 Cocceius가 그의 계약 신학에서 세 가지 계약 시기 즉 아담과의 행위 계약, 모세와의 은혜 계약, 그리스도와의 새 계약으로 나누어 구약 시대의 죄 사함과 신약 시대의 죄 사함이 서로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세기 신학자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서뿐만 아니라 교회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의 역사까지도 구속사의 개념을 가지고 해석하기에 이른 것이다. 19세기의 구속사 학파를 대표하는 Hoffmann은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함과 동시에 약속과 성취에서 성서의 통일성을 구속사적으로 다룬다. 

 

그리고 20세기에 Oscar Cullmann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단순한 점으로서가 아닌 선으로 이해하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계속되는 사건으로 보았다. 또한 Hunter는 구속사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목적으로 메시야를 보내어 그로 하여금 구원의 방편을 삼아 구속 사업을 완성하신다는 일관된 이야기이다"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유의해야 할 점은 신약의 구속사가 생길 때 과거와 현재의 모든 사건과 장차 일어날 것으로 기대되는 사건이 그것들의 장점과 중심적인 하나의 사건속에 요약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사건이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그리고 구속사에 대한 구성적인 역할을 하는 사실은 구속사의

발로를 성경에서 그 자신의 저자들이 특별한 사건 및 그 사건과 다른 사건의 관계에 대한 영적으로 파악된 계시에 귀속시켰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구속사는 역사의 예언과 관계된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그 정점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속 섭리 가운데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의 공포와 장래의 유혹에서까지 극복할 수 있는 능력으로 나타난 것이며, 그의 구속 사역으로 인하여 영벌이 제거되고, 죄의 세력이 타파되고, 영원한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과 자유를 온 인류에게 선재 은총의 선물로 주신 것이다. 

 

제3당 로마서를 중심으로 본 구속사

 

이미 앞에서 구속사의 개념과 구속자 이해를 통해서 개괄적인 의미를 다양한 각도에서 다루었다. 여기서는 이러한 외형적인 측면보다는 구체적으로 구원에 이르는 하나의 과정으로서의 구속사를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는 죄의 선언과, 칭의, 성화, 정죄 없음, 영광 순으로 다루려 한다. 

 

바울은 기독교 신도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준비하시고 복음이 계시하는 주제로 제시한 후에 전 인류가 보편적으로 또는 절실히 이같은 의를 가져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 먼저 입기 전에 죄를 회개해야 할 것을 가르친다. 

 

3-1 죄의 선언(In Sin)

 

구속이란 긍정은 죄악이란 부정에서 시작된다. 신적 부정이 없는 곳에 신적 긍정이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로마서 18절-3장20절에서 인류가 죄 아래 놓여 있음을 선언한다. 먼저 그는 이방인의 죄를 종교적인 죄와 도덕적인 죄로 나누어 역설한다. 그리고 유대인의 죄를 지적하고, 전 인류의 죄에 대하여 선언을 한다. 

 

전반적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있다. 자연의 빛과 율법의 빛 모두가 죄에서부터 죄에 이르는 하나님의 진도를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 여기에 따르는 대조법이 흥미롭다. 인간들의 죄악성의 묘사를 "경건치 않음과 불의"라는 끔직한 두 가지로 간추리고 있는 것이다. 곧 율법에 대한 불경건과 불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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