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예림장로교회

2016.06.12 19:55

아홉번째 이야기

조회 수 68 추천 수 0 댓글 0

Karl Barth는 기독론 전개에 있어서 "만인구원론"적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것이 현대 신학에 만인구원론적 경향을 초래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르트 자신은 어느 곳에서도 보편적 구원을 직접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사람을 구원받은 자와 버림받은 자로 구분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모든 사람들은 버림받고 동시에 구원받는 자로 간주한다. 모든 사람은 유일한 선택자인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선택되었다고 간주한다. 따라서 바르트의 견해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궁극적으로 구원받게 된다는 결론을 피하지 못한다. 

 

Rudolf Bultmann은 비신화화의 신학으로 유명하다. 그는 실존주의적 구원 해석을 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 끼어 있는 영원한 긴장 속에 존재하며, 항상 구체적 자연 세계에 사로잡혀 그 자신의 개성을 상실하여 버리든지 아니면 모든 외적인 안전을 포기하고 미래를 향하여 용감히 투신함으로 참사람다운 존재가 되든지 결단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이 죄의 본질이며, 육신에 속한 삶의 결과는 불안뿐이다. 고로 인간은 이런 불안의 상태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인간 스스로는 여기서 해방될 수 없다. 다만 인간 나사렛 예수의 십자가 사건으로 말미암아 육신에 매여 사는 불안의 삶이 변하여 자유로운 삶, 곧 참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다. 이것이 곧 구원이다. 그리고 이것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에서만 얻어지는데, 이 구원의 은혜는 구원의 메시지, 즉 케리그마가 전파되고 믿어질 때에만 얻어질 수 있다. 

 

Jurgen Moltmann은 과거와 현재보다 미래에 관심을 둔다. 그 미래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지는 종말 및 천국이 아니라 변혁과 혁명으로 이루어지는 종말이요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천국이다. 그는 특히 구속론에 있어서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일어나는 수직적인 측면에서 화해가 아닌 인간과 인간 사이의 평면적이고 역사적인 화해를 강조한다. 화해는 오직 역사적 장면 위에서 계급간의 투쟁이 끝나고 눌린 자가 해방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지상에 실현되는 날 이루어지며, 이런 사회적 구원이 곧 오늘의 구원이며 이 구원이 성취될 때 만인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몰트만에게 있어서는 수원은 미래가 아닌 오늘에, 천국이 아닌 이 땅에서, 하나님이 아닌 인간이 이루는, 개인적이 아닌 사회적이요 만인의 구원이다. 

 

Paul Tillich는 인간의 실존의 문제를 그리스도와 결부한다. 곧 그에게 있어 그리스도는 새로운 실재인데, 불완전하고 허무한 존재인 인간은 실재인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짐으로써 새로운 실재에 참여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만인에게 구원을 가져왔는데, 그 구원은 새로운 존재 속의 참여로서의 구원-중생, 새로운 존재를 수용하는 구원-칭의, 새로운 존재에 의한 변화로서의 구원-성화 등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해방 신학과 민중 신학 및 다윈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신학에서 말하는 구원관은 여기서는 간과 하도록 한다. 

 

이상에서 신학자들의 구원에 관하여 여러가지 주장들을 살펴보았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구원은 하나님의 은총이 의한 것이며, 인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대속물로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속죄주 즉 그리스도를 믿고, 신앙을 고백하는 행위를 통하여 주어지는 것 임을 볼 수 있다. 결국 구원이 이르는 길은 오직 메시야 한 길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현대 신학자들의 구원관은 성경의 가르침과 전통 신학에서 크게 벗어나 있으며, 성경적인 구원의 진리를 간과하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이제까지 구속의 개념에 대해서 이해를 촉진했다. 이제 구속사란? 무엇인가를 고찰함으로서 바울의 구속사를 준비하고자 한다. 

 

2-2 구속사란?

 

구속사는 모든 사람이 성경이 말하는 위대한 사건들과 직접 결부되어 있다는 신념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리고 이 사건들은 그리스도 안에 집약되어 있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속에서 전개 되고 있다. 따라서 역사와 구속사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고, 구속사 이해를 통해서 본 논고의 주제에 자연스런 접근을 하고자 한다. 

 

2.2.1 역사와 구속사 사이의 관계

 

역사란 우리의 언어로 구별이 분명하지 않으나 독일어에 있어서는 역사란 말이 두 가지 낱말이 있다. Historie와 Gechichte이다. 여기서 Historie는 세계사나 민족사, 정치사나 경제사와 같은 사람이 관찰하여 헤아릴 수 있는 "사학적 역사"요, Gechichte는 사람이 관찰하거나 헤아릴 수 없으되 실제에 있어서는 깊은 데에서 엄연히 일어나고 있는 "사건"으로서의 역사이다. 

 

인류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원년으로 하고 그 이전과 그 이후로 역사를 구분한다. 서구 사회에서는 18세기 이후, 우리 나라도 단군을 기원으로 하지 않고 서기를 쓰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실에서 역사의 참 의미를 깨닫게 된 결과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불신자에게도 역사의 의미가 주어졌다"고 한 브룬너의 말이 적용된 셈이다. 

 

기독교적 역사관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 이전의 시대는 준비의 시대요, 예수 그리스도 이후의 시대는 역사의 의미를 받아들여서 그것을 실현할 시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속사는 현대 신학의 논쟁에 있어서 중요한 신학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YAERIM PRESBYTERIAN CHURCH 3625 Chapel Road, Newtown Sq., PA 19073. 610- 931-4380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